정주영, 박정희의 산업혁명…해발 9000미터 보릿고개 넘어 수출100억달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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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농촌의 어느 마을 |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보릿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 아버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 어머니가 울고 있다. / 내가 울고 있다.
1965년 황금찬 시인이 쓴 보릿고개의 일부다. 시인은 한국의 보릿고개를 킬리만자로, 에베레스트보다 높은 해발 구천 미터라고 표현했다. 살아 넘으면 다행이니 내 딸을 백원에 팔아야 하는 장진성 시인이 언급한 북한 상황에 못지않다. 공식 실업은 5분의 1, 절대 빈곤율은 40%에 육박했다. 누구든 돈벌이만 있으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지구를 반 바퀴 돈 독일 땅에 일자리가 생겼다. 한국의 임금 수준을 10배가 넘는 광부, 간호사 일이었다. 정부가 공고한 첫 번째 파독 광부 모집에 2895명이 몰려 경쟁률이 15대 1을 기록했다. 1977년까지 독일로 떠난 광부는 8395명, 간호사는 1만371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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