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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클럽 40년사 (1957–1997)
  • 분류 : 현대그룹관련/기타기관·단체
  • 서명 : 관훈클럽 40년사 (1957–1997)
  • 저자 : 관훈클럽
  • 출판사 : 관훈클럽  
  • 출판년도 : 1997
  • 등록번호 : AEM000019
  • ISBN :
  • 도서이용정보 : 대출가능
내용

관훈클럽은 언론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고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면서 동시에 언론의 책임에도 관심을 갖고자 했던 젊은 기자들이 시작한 작지만 진지한 모임이 발전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성장하였다. 그 시작은 1956년 4월 30일, 종로구 관훈동 84의 2번지에 최병우, 진철수 (AP통신), 박중희(코리아 타임스), 조세형(평화신문), 노희엽, 김인호, 임방현, 정인량, 박권상(합동통신) 등 9명의 언론인이 모여 연구와 친목을 목적으로 관훈클럽 운동을 시작하면서였다. 후에 이시호(로이터)가 합류된 10명이 관훈클럽 최초의 창립멤버이다. 그들은 이 모임의 이름을 발상지에서 따와 관훈클럽이라 확정짓고 1957년 1월 11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연구와 친목, 언론 자질향상을 위한 사업과 활동으로 시작해 신문의 날 제정, 편집인협회 결성, 신문윤리강령 제정, 한국 언론 최초의 연구지 『신문연구』 발간, 기사 스타일 북 제정 시도, 민주적인 토론문화를 확산시킨 관훈토론회 개최, 관훈언론상 신영기금 후원에 의한 언론인 연수 등 지난 40여 년간 관훈클럽은 언론 발전과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편, 클럽의 초기 회원이었던 정신영은 언론인이자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의 막내 동생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정신영은 1956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였고 1957년 1월 22일 박권상과 조세형의 추천으로 관훈클럽의 30번째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는 클럽이 주관한 독립신문 창간 61주년 기념행사와 신문주간 설정 준비특별위원회 총무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1957년 10월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그는 한국일보 독일 통신원(1958년 8월)과 동아일보 유럽 특파원(1961년 7월)으로 임명되는 등 언론계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유럽의 상황을 국내 독자에게 알리려 힘썼다. 하지만 1962년 4월 14일 급작스러운 장폐색증으로 수술을 받다가 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관훈클럽은 클럽의 이름으로 그의 묘비를 세워줬다. 그것은 클럽 4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고 한다.

정주영은 집안의 장남으로서 막내 정신영을 무척 아꼈으며 장래에 대한 큰 희망을 걸었던 것 같다. 정주영은 아우의 죽음 이후 그가 못 다한 뜻을 애석히 여기는 한편 관훈클럽의 우의에 감사하며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관훈클럽 관계자를 리셉션 석상 같은 자리에서 만날 때마다 수시로 클럽의 실정을 묻곤 하였다. 1977년에는 관훈클럽이 20주년을 맞아 ‘클럽 중흥의 해’로 삼고 모금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직접 클럽 총무 조세형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약속하였다. 조세형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동생인 신영과 클럽의 인연을 기리고 관훈클럽이 지향하는 큰 뜻에 찬동하는 의미에서라도 어떤 형태로든지 클럽을 도와 뜻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히며, 자금 운영에 관한 일체의 것에 자기나 자기 가족은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면서 1억 원을 기탁할 의사를 밝혔다. 관훈클럽은 논의 끝에 정주영에게 기탁 받은 1억 원을 기금으로 재단법인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기금은 1977년 9월 10일에 정식 출범하였으며 언론인의 전문 분야에 관한 연구·저술·출판사업 지원, 국제교류 및 활동을 지원하는 등 한국 언론인의 자질향상을 기하고 문화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였다. 출원된 기금으로 연구·저술·출판 지원 사업에 매년 10~15건씩 지원하고 있고 자체 출판 사업으로 20년간 304건의 책을 발행했으며, 특히 『한국언론연표』 등과 같이 수익성이 없어 시중 출판사에서는 발행하기 어려우나 언론계에 도움이 되는 책을 발간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관훈클럽은 지난 40년간 언론계 전반을 위한 공익재단으로서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다.

해설

관훈클럽은 1957년 1월, 젊은 신문인 간의 친목과 신문연구 목적으로 발족되었다. 언론의 질적 향상과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 위해 선도해 온 언론인의 모임이었으며, 대·내외적으로 언론가치와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씨앗 구실을 하였다. 관훈클럽에서는 이러한 언론의 기본정신과 원칙을 되새기고자 40년 동안의 발자취를 정리해 『관훈클럽 40년사』를 펴냈다. 정주영의 동생 정신영을 기념하여 세워진 「관훈클럽신영기금」의 20년 발자취도 함께 정리하였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있으며, 「1부 관훈클럽의 활동」, 「2부 관훈클럽의 사업」, 「3부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4부 나의 총무시절」, 「5부 자료」로 나누어져 있다. 1부와 2부는 1956년 ‘관훈클럽’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1997년까지의 활동과 사업을 정리하였다. 3부는 1977년에 설립된 ‘관훈클럽신영기금’의 설립배경, 설립과정, 기금의 운용과 사업에 대해 정리하였다. 4부는 초대에서 43대까지 관훈클럽 총무들의 총무시절 일화가 기술되어 있다. 5부는 관훈클럽과 관련된 자료들로 규정, 일지, 임원, 회원목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1부 관훈클럽의 활동」과 「3부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에는 정주영과 관련된 활동이 기술되어 있으며, 특히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과 관련한 내용이 다수 소개되고 있다. 1977년 정주영은 클럽의 초기 회원이자 동아일보 기자였던 그의 아우 정신영의 못 다한 뜻을 애석히 여기는 마음과 관훈클럽의 우의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1억 원의 기금을 기탁하였다. 이후 1978년 1월 11일 관훈클럽 21주년 기념식에서 2억 원을 추가로 증자하는 등 1995년까지 정주영과 그의 가족들은 10차례에 걸쳐 총 66억 8천만 원의 기금을 출연하였다. 또한 클럽과 기금의 오랜 숙원이었던 회관 건립 추진과정에서 필요한 부지를 신영연구기금의 이름으로 직접 매입하고 공사를 담당하는 등 클럽의 발전과 저변 확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책은 이러한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의 조성 과정과 내역, 정관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각종 에피소드도 함께 실어 당시 정황을 쉽게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조세형(관훈클럽 4대, 23대 총무)이 신영기금 1억 원을 받으러 현대사옥 회장실로 찾아 갔을 때 정주영이 잣알이 띄워진 홍차를 마시다가 입에서 잣알이 튀어 나와 테이블 위에 털어지자 바른 손으로 냉큼 잣알을 집어 먹었다는 이야기와 신영기금으로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을 때 정주영이 관훈클럽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재단의 형식이나 명칭에 대해서도 아무런 조건이 없고 일체의 결정은 클럽측이 알아서 해 달라는 태도로 일관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정주영의 인간적인 면모와 아우에 대한 애정, 관훈클럽에 대한 생각과 기여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정주영은 관훈클럽에서 개최하는 ‘관훈토론회’에 경제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3차례에 연사로 초대 되었다. 관훈토론회의 강연 내용을 직접 책에 소개하고 있지 않지만 정주영과 ‘관훈클럽’의 친밀도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이 책을 통해 정주영과 ‘관훈클럽’,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의 지난 활동과 사업내역을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목차

한국언론과 관훈클럽 정신 / 이성춘 = 1

제1부 관훈클럽의 활동
제1장 창립 전사
1. 미국무성의 기자연수 = 152.

클럽운동 시작 = 243.

연구모임 = 29

제2장 창립과 대외활동
1. 창립총회 = 362.

신문의 날 제정 = 423.

한국에는 언론자유 없다 = 49

제3장 사업 목적 확대
1. 회지 창간 = 562.

연구와 현실 참여 논쟁 = 643.

최병우의 순직 = 734.

신문연구 창간 = 76

제4장 자유와 통제의 양극에서
1. 4.19후의 자유과잉 = 822.

5.16후의 통제 = 893.

노조연구, IFJ가입 = 99

제5장 클럽의 중흥
1. 창립 20주년 = 1042.

새로 시작하는 사업들 = 110

정주영의 기금 출연/영문명칭 제정, 월보 창간/관훈토론회 시작/관훈언론상 제정
3. 성장하는 클럽 = 117

제6장 성숙기의 언론공익 사업
1. 한국경제신문 별관 시절 = 1262.

창립 30주년 = 1343.

회원의 증가와 사업 확대 = 141

300만명 돌파 / 신영기금회관 건립 / 국제교류
제2부 관훈클럽의 사업
제1장 신문연구
1. 전신은 프린트판 『회지』 = 1512.

신문연구의 변천 = 155

제2장 관훈월보 관훈통신
1. 프린트판 뉴스레터 = 1612.

관훈월보 = 1693.

관훈통신 = 171

제3장 관훈토론회
1. 비공개 간담이 공개토론으로 = 1812.

정치 발전과 관훈토론 = 185

제4장 최병우기념사업
1. 클럽 창립의 중심인물 = 1912.

사업회 설립 이전 = 1953.

기념 사업 = 200

제5장 한국 언론 2000년 위원회
1. 1995년 1월부터 논의 = 2062.

2000년 위원회 발족 = 210

제3부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제1장 30번째 회원 정신영
1. 동아일보 기자 = 221

2. 현대그룹 정주영의 제의 = 226

제2장 기금 설립
1. 설립 과정 = 2302.

법인 등기 완료 = 236

정주영의 1억원 / 기금의 증자 / 지원신청 접수
제3장 기금의 운용과 사업
1. 현금 출연과 부동산 = 2402.

자체 출판 사업 = 2453.

비영리 출판 = 2514.

해외 연수 = 2575.

신영기금회관 = 260

출판 사업 위한 사무실 임대 / 회관 걸립 추진 / 착공과 완공
제4부 나의 총무시절
진철수 / 이시호 / 김종규 / 조세형 / 박권상 / 김용구 / 정인량 / 조용중 / 정종식 / 홍순일 / 이은우 / 권오기 / 김진현 / 유지호 / 유일연 / 봉두완 / 남재희 / 박중길 / 계광길 / 박현태 / 이웅희 / 송정숙 / 김영희 / 남시욱 / 조순환 / 손주환 /이도형 / 강인섭 / 김영일 / 안병찬 / 신용석 / 신성순 / 이성준 / 구월환 / 이광훈 / 남중구 / 김건진 / 임춘웅
제5부 자료
제1장 규정
1. 관훈클럽 = 3092.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3143.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 규정 = 326

제2장 임원
1. 관훈클럽 역대 임원 = 3272.

신영연구기금 역대 임원 = 3333.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 위원 = 336

제3장 사업 내용
1. 신영연구기금 지원 저술출판 = 3372.

신영연구기금 자체출판 = 3523.

관훈토론회 오찬회 조찬회 = 353

제4장 『신문연구』 총목차 = 360

제5장 일지 = 418

제6장 회원
1. 회원명단 = 5252.

회원 주소록 = 557

인간미 풍기는 역사를 / 정진석 = 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