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정주영 김우중을 통해 본 기업가의 심리와 자격’이라는 부제가 붙은 『기업가의 탄생』 은 심리학자가 쓴 책이다. 한국사회에서 재벌총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중도가 없다. 부패와 탐욕의 상징으로 읽히거나 넘쳐나는 부를 소유한 대단한 존재로 인식되거나 둘 중 하나다. 두 가지 경우 모두 공정한 평가를 가로막는 편견이 존재한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대한민국 경제에서 신화로 자리하는 3대 기업가를 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자 하였다. 이들을 미화, 찬양 혹은 매도하는 기존의 평가로부터 아주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까지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 분석을 시도하는 3대 기업가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저자가 밝히는 성격유형 이론에 의하면 이병철 회장은 ‘완벽을 추구하는 모범생’ 유형, 정주영 회장은 ‘창의적인 직관형 지도자’ 유형, 김우중 회장은 ‘용감하고 저돌적인 장군’ 유형으로 분류된다. 유형의 차이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관리의 삼성과 저력의 현대, 속도의 대우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그 중에서도 ‘창의적인 직관형’인 정주영 회장은 그 유형에 걸맞게 일화들도 흥미롭다. 내향적인 이병철 회장과 달리 정주영 회장은 외향적이다 보니 자신감이 강하고 낙천적인 성향이 다. 때로 지나칠 정도로 솔직해서 말실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성격 탓에 일찍부터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통찰력과 창의성이 뛰어난 직관형답게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의 핵심을 간파하는 능력이 몹시 뛰어나서 보는 사람을 전율케 할 정도였다고 한다.
미군들이 한겨울 묘지에 푸른 잔디를 입혀달라고 요구하자 보리를 왕창 심어서 푸른 잔디밭처럼 꾸몄던 일이나 서산 방조제 물막이 공사에서 조류가 강해 커다란 바위묶음까지 휩쓸려 가버리자 20만 톤 급 유조선을 가라앉혀 파도를 막은 일이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가 가진 이러한 창의적인 대응 방식은 일명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기도 했을 정도이다.
미래지향적이고 통념에 구애받지 않았던 정주영은 재벌이 된 뒤에도 재벌이라는 단어를 싫어한 반면 노동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다고 한다. 늘 노동자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면서 노동의 가치를 한시도 잊지 않았던 그의 마음가짐은 노동이 천시되는 현대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정주영 뿐 아니라 이병철 회장과 김우중 회장 역시 이기적이며, 돈이 전부라고 믿는 사고를 몹시 싫어하였다.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으며 사대주의를 거부하는, 오직 사람만이 희망이고 노동자를 대우해야 한다는 이들의 가치관이 이들 성공의 바탕에 뿌리하고 있었다. 비록 이들이 때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기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업가의 탄생』의 저자 김태형은 심리학자로, 현재 연구, 강의, 집필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이병철·정주영·김우중을 통해 본 기업가의 심리와 자격’이라는 부제처럼, 세 사람의 기업가를 대상으로 그들의 생애와 기업 활동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1장~3장까지는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의 순서로 각 인물의 출생부터 기업 경영 방식을 분석하고, 4장에서는 세 재벌의 공통점을, 5장에서는 차이점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의 전체적인 서술 방향에 대해 잘 밝히고 있다.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의 독특한 개인사는 그들만의 개인 심리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업 활동을 포함한 그들의 전 인생에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는 영향을 주었다. 나는 아버지관계를 중심으로 한 부모관계, 개개인의 독특한 성장환경,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잊을 수 없는 사회관계 등을 주요 축으로 삼아 그들의 무의식적 동기, 기본적인 감정, 신념과 가치관 등을 밝혀내고 그것이 그들의 인생과 기업 활동에 구현되는 과정을 그려낼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각 재벌의 어린 시절의 경험, 부모와의 관계 등을 분석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정주영의 경우 아버지와 공유했던 강력한 유대감이나 가출을 통해서 자기의 뜻을 피력하고 그것이 수용되는 과정 등을 분석하면서, 아버지의 지지를 확인하고 그것이 자신감과 든든한 뱃심, 비비기 능력 등으로 확장해가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직접 현장에서 노동을 한 경험도 정주영의 자신감 발산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기존에 책들이 정주영을 심리적으로 분석한다고 할 때, 장남으로서의 책임감 등만을 언급하는 것과 비교하면, 저자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리상태의 분석과 함께 성격 유형도 함께 언급되고 있다. 저자는 정주영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창의적인 직관형 지도자 즉, ENFJ(외향-직관-감정-실천)라고 규정하면서, 정주영의 기업경영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활발한 성격에 남들과도 잘 어울리고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었던 점에서 외향적인 모습과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모습에서 직관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직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타인의 감정에 잘 공명한다는 점에서 감정의 성격을, 시간 낭비 없이 현장을 철저히 관리하는 모습에서는 실천의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는 다양한 예시가 함께 제시되어 있어 내용을 이해하기에 용이하다. 또 4장과 5장에서 세 재벌의 성격과 경영 방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서술하고 있는 것도 각 재벌의 성격적 특징을 더 잘 드러낸다는 장점이 있다.
성격유형에 따른 분석은 정주영의 행동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성격유형분석은 각 재벌이 직접 성격 유형 검사를 진행 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생애와 경영 방식을 통해서 찾아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각 재벌의 경영을 분석한다는 것은 환원론적이 되기 쉽다. 또 어떤 연구자가 성격유형 분석을 시행했는가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한 예로 『5대 그룹 총수의 성격분석 보고서』 (중앙M&B, 1998)에서는 정주영의 성격분석을 ENFP(외향-직관-감정-인식)로 하고 있다. 결국 해당 자료를 활용할 때에는 이러한 성격분석이 신선한 시도이지만 논리적인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책머리에 = 5
프롤로그 _ 심리학자, 3대 기업가를 분석하다 = 13
1. 이병철 - 기업가가 되기로 결심한 선비 = 20
2. 정주영 - 조금 더 살지 못한 게 한이로다 = 64
도망자 아들과 추격자 아버지 = 64
끈질긴 비비기 능력 = 67
행복했다면서 가출은 왜 한 거야? = 72
해보기나 했어? = 76
나를 노동자라 불러다오 = 79
정주영의 성격 : 창의적인 직관형 지도자(ENFJ) = 85
아버지가 웃으시면 나는 행복하다 = 98
언제까지나 행복한 소년 = 102
3. 김우중 - 너무 높이 날아오르다 = 108
4. 이병철=정주영=김우중 : 세 재벌의 공통점
돈이 다가 아니다 = 154
이기적인 기업가는 대성할 수 없다 = 159
사대주의는 싫다 = 164
우리 민족, 정말 대단해요 = 174
합리적 보수주의 = 181
오직 사람만이 희망이다 = 186
가능한 한 노동자를 후대하라 = 193
5. 이병철 VS 정주영 VS 김우중 : 세 재벌의 차이점
무노조 VS 노조 = 210
귀족적 품위 VS 서민적 소박함 = 216
계몽군주 VS 아버지 = 221
내향(I) VS 외향(E) = 228
안전 VS 모험 = 236
투쟁 VS 순응 = 243
에필로그 _ 그들이 한국사회에 남긴 기업의 사회적 책임 = 252
부록
성격이론 개요 = 258
인물 성격표 = 262
주석 = 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