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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의 조건
  • 분류 : 기업·경영
  • 서명 : 명가의 조건
  • 저자 : 김동선
  • 출판사 : 원음사  
  • 출판년도 : 1986
  • 등록번호 : AEM000034, AEM000406, AEM000407
  • ISBN : 2005055000157
  • 도서이용정보 : 대출가능
내용

󰡔명가의 조건󰡕은 종교, 경제, 문학, 정치 등 각 분야에서 ‘명가’로 불릴만한 인물들의 전기를 간략하게 모아 정리한 책이다. 집안 배경부터, 어린 시절의 성장배경, 그리고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된 후의 내용들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정주영은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명가로서 등장한다. 저자는 정주영을 두고 ‘입지전적(立志傳的) 재벌총수’라고 말하고 있다. 정주영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총수가 되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주영은 천성이 농사꾼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장남인 정주영에게 가업인 농사를 맡아야 한다고 늘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정주영은 농사일이 안겨주는 가난과 권태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끝내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 가출하여 도회지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된다. 특히 ‘북흥상회’라는 쌀 도매상에서 정주영이 보여준 성실함은 북흥상회 주인에게는 물론이고, 거래처로부터 신용을 얻게 한다. 마침내 정주영은 자신의 두터운 신용으로 북흥상회를 인수하여 ‘경일상회’라는 자신의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주영이 농사일을 통해 ‘일이란 손톱 발톱이 빠지도록 해야만 성취된다는 단순한 논리’ 즉 “「농삿군의 지혜」”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가 쌀 도매업을 금지하는 바람에 그만두게 된다. 이후 그는 적은 자본금을 바탕으로 자동차 정비소를 차리게 된다. 그는 오직 자신의 신용만으로 부족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잔금을 치르자마자 그의 정비소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배짱 좋게 무허가로 자동차 정비를 계속하였다. 경찰에게 번번이 단속을 당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통사정을 하였다. 결국 경찰 단속을 피해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 방도를 얻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정주영은 「배짱 좋은 사나이」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준다. 그는 이 기간에 제법 많은 돈을 벌었으며, ‘기계원리’를 터득하게 된다.

그가 터득한 기계원리는 현대건설을 비롯하여 자동차 사업과 조선업을 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정주영이 필생의 사업인 건설업에 뛰어든 것은 해방이 된 후 1947년 5월의 일이다. 해방이 되어 자동차수리사업 경험을 살려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회사를 차렸다. 주로 미군 병기창에 가서 자동차 수리를 청부하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어차피 견적을 내어 계약을 하고 돈을 받는 방식이라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건설업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정주용의 동생 인영이 언급되는데,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정인영의 영어 실력은 1952년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숙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건설업자로서 미군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뚝심 좋은 정주영에게 영어에 능통한 동생 인영은 굉장한 힘이 되었다.
울산조선소 건설은 정주영의 일대기에 하나의 전쟁으로 표현된다. 정주영은 「없는 나라 가난한 집안에서 언제 이것저것 가릴 시간이 있느냐」는 말로 회사 간부들을 독려하였다. 정주영에게 울산조선소 건설은 그가 가진 열정 그 자체였다. 특히 회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기능공들의 소요사태를 일으켰을 때,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직접 해결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사용자로서 노사분규를 해결하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특히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정주영의 생애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는 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주베일 산업항을 건설한 것이다. 이 공사는 현대가 9억 3천 1백 14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예산으로 얻어낸 것인데, 주위의 수많은 우려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정주영은 뚝심 하나로 훌륭히 공사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해설

저자인 김동선은 책머리에서 ‘출세’의 의미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본래 입신하여 훌륭하게 되는 것이 출세의 사전적 의미인데, 사회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출세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출세 자체를 매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출세한 후 한 일가를 이룬 이들을 ‘명가(名家)’의 일원으로 보면서, 명가가 되기 위한 조건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0명의 인물들은 한국 현대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소위 ‘입신양명’ 했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이다. 책의 주요 내용은 이들의 가문, 청소년 시절, 그들 인생의 커다란 시련과 하이라이트 등이다.

선정된 인물들은 김수환 추기경, 김준엽 전 고대총장, 이병린 전변호사협회회장, 이종근 종근당 회장, 정구영 전 공화당 총재,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시인 한용운, 화가 허건, 허정 전 과도정부수반, 소설가 황순원이다. 다만 인물 선정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저자의 판단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은 참고로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1986년에 쓰여 졌기 때문에,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정주영 관련 내용은 아산의 유년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사업 전개 상황이다. 24쪽 정도의 분량 중 절반 정도인 12쪽 분량을 현대 수립 이전의 유년기와 가출 이후의 생활 등에 할애하고, 사업 분야에서는 현대자동차 및 현대중공업의 건설 과정과 주베일 산업항 건설 등에 관련된 일화들을 요약하고 있다. 자서전이 아직 출판되지 훨씬 전이므로, 저자가 주로 활용하고 인용한 자료는 『현대건설35년사』(현대건설주식회사, 1982)이다. 아산의 개인적인 이력이나 일화 등은 모두 『현대건설35년사』를 참고로 하고 있다.

전체적인 서술은 평이하고, 자서전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짧은 글이기 때문에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게다가 1980년대 중반에 쓰여진 책이다 보니, 1990년대의 사업전개 내용을 다룰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마지막 서술 부분이 완결되지 않고 잘려진 듯한 느낌을 준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농사일이 정주영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서술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농사군의 지혜와 진리” 부분에서, 부모님을 도와서 농사일을 하면서 그것을 통해 단순하고 경험을 중시하고, 자기의 진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주영이 껄끄러운 언론을 대할 때나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때 이 때의 지혜로부터 도움을 얻었다고 서술했는데, 여타의 많은 도서들이 농사로부터 계속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정주영의 모습을 그리는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대목이다. 다만 그 내용이 너무 소략하여 제목에 비해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책의 실제 내용과는 별개로, 정주영이 명가의 일원으로 선정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는 궁금해진다. 1980년대 중반 시점에 다른 쟁쟁한 기업가들을 제치고, 정주영이 ‘입지전적 재벌총수’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정주영과 현대에 관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목차

책 머리에
1장 순교자 후예의 영광 - 추기경 김수환 가문 = 17

2장 병 탈출 1호 - 전 고대총장 김준엽 가문 = 45

3장 권운동의 거목 - 전 변협회장 이병린 가문 = 77

4장 신화적 약업인생 - 종근당 회장 이종근 가문 = 99

5장 경골(硬骨)의 이력 - 전 공화당총재 정구영 가문 = 125

6장 입지전적 재벌총수 -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가문 = 155

「장남이 농사 안 지으면 집안 망해」 = 155

흉년으로 결국 농삿군 청산 = 160

형의 뚝심, 동생의 영어 실력 = 167

농삿군의 지혜와 진리 = 169

객기(客氣)인가, 새로운 장(章)인가 = 171

바지선(船) 수송작전으로 재계 정상 = 173

7장 항일투쟁의 풍운아 - 시인 만해 한용운 가문 = 181

8장 남화의 대가 - 화가 남농 허건 가문 = 219

9장 물산객주의 아들 - 전 내각수반 허정 가문 = 245

10장 한국 소설문학의 거봉 - 소설가 황순원 가문 = 271